2017년 9월 초, 필리핀 마닐라.
카지노의 불빛은 한밤중에도 꺼질 줄 몰랐다. 바카라 테이블 위에서는 카드가 쉴 새 없이 뒤집혔고, 붉고 푸른 칩이 국경 없는 돈처럼 오갔다.
테이블 한쪽에 앉은 이주영(가명)씨의 눈은 딜러의 손끝에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승패가 결정될 때마다 주변에서는 환호와 탄식이 교차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이 없었다.
그는 게임에 참여하지 않고 한참 동안 테이블만 지켜봤다. 작은 수첩에 무언가를 기록했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나는 돈을 걸기 전에 먼저 게임의 흐름을 봅니다. 남들처럼 기분이나 느낌으로 베팅하지 않습니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거의 완성됐습니다. 카지노를 이길 수 있는 나만의 시스템이 말입니다.”
그의 말에는 확신이 넘쳤다.
이씨는 평범한 카지노 마니아가 아니었다. 북한에서 경제대학을 졸업한 엘리트였고,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북한군 3개 군단의 생계를 책임졌던 경제 실무 책임자였다.
철광물 등 광물을 찾아 중국 상인에게 팔았고, 군인들을 동원해 철강 부산물을 수집했으며, 계절에 따라 민물고기를 잡아 군부대 운영자금을 마련했다. 계산과 협상, 위기 돌파에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그런 그가 탈북에 성공해 남한에 정착한 뒤 선택한 마지막 승부처가 카지노였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영리하다고 자신하는 사람들조차 무너뜨리는 곳이 카지노다.
그리고 이씨는 이듬해인 2018년, 마닐라에서 흔적처럼 사라졌다.
◇ 졸업장을 건 장기 대결
이씨의 승부사 기질은 젊은 시절부터 남달랐다고 한다.
원산의 경제대학에 다니던 그는 졸업을 앞두고 돌연 학교를 떠났다. 북한 최고의 장기 고수를 찾아가 장기를 배우기 위해서였다.
3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장기 비법을 수련한 그는 스승에게서 “더 가르칠 것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이후 원산으로 복귀하면서 도시 몇 곳에서 돈을 걸고 장기를 두었다. 장기판에서 상대를 함정에 빠뜨리는 ‘박포장기’를 내걸어 적지 않은 돈도 벌었다고 했다.
문제는 학교였다.
학교에 돌아왔지만 무단으로 장기간 수업에 빠진 그에게 학과장은 졸업장을 줄 수 없다고 통보했다. 이씨가 장기를 배우느라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고 설명하자, 장기 애호가였던 학과장은 뜻밖의 승부를 제안했다.
“나와 장기를 둬서 이기면 졸업을 인정하겠다. 지면 학교를 떠나라.”
그의 장래가 장기판 위에 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