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타타 저널

요지경카지노·26. 10. 31.

북한군 3개 군단 생계 책임졌던 '탈북 엘리트', 카지노 타짜 도전?

홍춘봉편집국 기자·기자

2017년 9월 초, 필리핀 마닐라.

 

카지노의 불빛은 한밤중에도 꺼질 줄 몰랐다. 바카라 테이블 위에서는 카드가 쉴 새 없이 뒤집혔고, 붉고 푸른 칩이 국경 없는 돈처럼 오갔다.

 

테이블 한쪽에 앉은 이주영(가명)씨의 눈은 딜러의 손끝에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승패가 결정될 때마다 주변에서는 환호와 탄식이 교차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이 없었다.

 

그는 게임에 참여하지 않고 한참 동안 테이블만 지켜봤다. 작은 수첩에 무언가를 기록했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나는 돈을 걸기 전에 먼저 게임의 흐름을 봅니다. 남들처럼 기분이나 느낌으로 베팅하지 않습니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거의 완성됐습니다. 카지노를 이길 수 있는 나만의 시스템이 말입니다.”

 

그의 말에는 확신이 넘쳤다.

 

이씨는 평범한 카지노 마니아가 아니었다. 북한에서 경제대학을 졸업한 엘리트였고,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북한군 3개 군단의 생계를 책임졌던 경제 실무 책임자였다.

 

철광물 등 광물을 찾아 중국 상인에게 팔았고, 군인들을 동원해 철강 부산물을 수집했으며, 계절에 따라 민물고기를 잡아 군부대 운영자금을 마련했다. 계산과 협상, 위기 돌파에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그런 그가 탈북에 성공해 남한에 정착한 뒤 선택한 마지막 승부처가 카지노였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영리하다고 자신하는 사람들조차 무너뜨리는 곳이 카지노다.

 

그리고 이씨는 이듬해인 2018년, 마닐라에서 흔적처럼 사라졌다.

 

◇ 졸업장을 건 장기 대결

 

이씨의 승부사 기질은 젊은 시절부터 남달랐다고 한다.

 

원산의 경제대학에 다니던 그는 졸업을 앞두고 돌연 학교를 떠났다. 북한 최고의 장기 고수를 찾아가 장기를 배우기 위해서였다.

 

3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장기 비법을 수련한 그는 스승에게서 “더 가르칠 것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이후 원산으로 복귀하면서 도시 몇 곳에서 돈을 걸고 장기를 두었다. 장기판에서 상대를 함정에 빠뜨리는 ‘박포장기’를 내걸어 적지 않은 돈도 벌었다고 했다.

 

문제는 학교였다.

 

학교에 돌아왔지만 무단으로 장기간 수업에 빠진 그에게 학과장은 졸업장을 줄 수 없다고 통보했다. 이씨가 장기를 배우느라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고 설명하자, 장기 애호가였던 학과장은 뜻밖의 승부를 제안했다.

 

“나와 장기를 둬서 이기면 졸업을 인정하겠다. 지면 학교를 떠나라.”

 

그의 장래가 장기판 위에 올랐다.

 

이씨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학과장과 세 차례 대국해 모두 이겼다. 학과장은 한동안 장기판을 바라보다가 패배를 인정했다.

 

“학생에게 장기를 진 것은 처음이다. 그 정도 실력이라면 졸업을 인정하겠다.”

 

이씨에게 장기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었다. 상대의 의도를 읽고 수십 수 앞을 내다보는 두뇌싸움이었다.

 

훗날 그가 바카라를 처음 접했을 때도 같은 생각을 했다.

 

‘장기에 길이 있다면, 카지노에도 반드시 길이 있을 것이다.’

 

그 믿음이 그의 인생을 다시 뒤흔들었다.

 

◇ 북한군 3만 명을 먹여 살린 경제통

 

1990년대 중반 북한 경제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공장은 멈춰 섰고 배급체계는 무너졌다. 군부대에도 식량과 연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다.

 

어느 날 군단 관계자가 경제대학을 나온 이씨가 머리가 비상하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나라에서는 무기와 탄약 외에는 지원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군인들을 먹여 살릴 방법을 찾아주시오.”

 

당시 그에게 제공된 것은 군 병력 2개 소대와 화물트럭, 버스, 승용차였다. 군복과 계급장, 장교 신분증도 주어졌다고 했다.

 

이씨는 군단사령부 인근에 창고와 사무실을 만들고 경제활동을 시작했다. 중국 무역업자들이 원하는 물건부터 조사했다.

 

중국 상인은 철과 금, 은, 동은 물론 코발트와 니켈 같은 희귀금속도 사겠다고 했다. 이씨는 폐광과 제련소, 민가에 흩어진 광물을 모았다. 평양 인근의 낡은 제련소에서는 방치된 철강 부산물을 대량으로 수거했다.

 

대동강의 얼음이 녹으면 군인들에게 그물을 나눠주고 까나리와 실뱀장어를 잡게 했다.

 

그가 벌어들인 돈은 군인들의 식량과 부대 차량의 연료가 됐다. 이씨는 어느새 3개 군단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 되었다. 당시 그의 계급은 대좌였다.

 

그러나 북한에서 성공은 안전을 보장하지 못했다.

 

가까운 친척이 남한과 내통한 혐의를 받으면서 그의 운명도 순식간에 뒤집혔다. 평소 알고 지내던 보위부 직원이 은밀하게 경고했다.

 

“당신도 곧 끌려갈 것이오. 시간이 없소.”

 

이씨는 곧바로 탈북을 결심했다.

 

◇ 얼어붙은 압록강에서 울음이 터졌다

 

2007년 2월의 어느 새벽.

 

압록강은 두껍게 얼어붙어 있었다. 이씨는 부인과 어린 아들을 데리고 국경으로 향했다. 다른 자녀들까지 한꺼번에 데려가면 발각될 위험이 커진다고 판단해 막내아들만 데리고 먼저 탈출하기로 했다.

 

그는 아이를 대형 배낭에 넣어 등에 멨다.

 

강 건너편에서는 조선족 지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문제는 강을 가로지르는 서치라이트와 국경수비대였다.

 

빛줄기가 얼음판을 훑고 지나갈 때마다 세 사람은 걸음을 멈췄다. 한 발짝만 잘못 내디뎌도 모든 것이 끝날 수 있었다.

 

강 중간에 이르렀을 때 배낭 속 아이가 잠에서 깨어났다. 춥고 답답했던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침묵하던 압록강 위로 울음소리가 퍼졌다.

 

곧바로 북한군의 서치라이트가 움직였다. 이씨 부부를 향해 불빛이 모였고 뒤이어 총성이 터졌다.

 

“따르륵, 따따따!”

 

이씨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얼음판에서 미끄러졌다가 다시 일어섰다. 등에 멘 배낭에서는 아이가 계속 울었다.

 

가까스로 중국 땅에 도착했지만 추격은 끝나지 않았다. 총성을 들은 중국 측에서도 차량을 동원해 국경 일대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이씨 가족은 커다란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차량의 전조등이 바로 앞을 훑고 지나갔다. 입에서 나온 입김마저 들킬까 두려웠다.

 

그들은 30분 넘게 꼼짝하지 못했다.

 

그렇게 압록강을 건넌 이씨는 중국을 거쳐 태국으로 향했고, 마침내 남한 땅을 밟았다.

 

그는 총탄이 날아오는 국경도 넘었다. 북한과 중국의 감시망도 빠져나왔다.

 

그래서였을까.

 

이씨는 세상에 자신이 넘지 못할 벽은 없다고 믿게 됐다.

 

◇ 용접공이 처음 만난 카지노

 

남한에 정착한 이씨는 전남 목포의 한 조선소에서 용접공으로 일했다.

 

북한에서 경제사업을 지휘했던 그가 남한에서는 불꽃이 튀는 철판 앞에 서야 했다. 낯선 환경이었지만 그는 용접기술을 배우며 성실하게 일했다.

 

그러던 어느 겨울, 휴가를 맞아 스키를 타러 강원랜드를 찾았다.

 

스키장이 목적이었지만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은 카지노였다.

 

처음 들어선 영업장은 충격적이었다. 화려한 조명과 전자음, 테이블마다 쌓여 있는 칩, 카드 한 장에 수백만 원이 오가는 광경은 북한에서 40년을 살아온 그에게 완전히 새로운 별천지였다.

 

그는 처음에는 몇십만 원으로 게임을 시작했다. 짧은 시간에 돈이 몇 배로 불어나는 경험도 했다. 반대로 눈앞의 돈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일도 겪었다.

 

이씨의 머릿속에는 승리했던 순간만 강렬하게 남았다.

 

“북한에서는 평생 카지노를 보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멋진 오락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몇십만 원으로 몇백만 원을 따보니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머리라면 카지노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

 

이 위험한 확신이 싹텄다.

 

그는 장기를 배워 최고수를 찾아냈고, 북한군 3만 명을 먹여 살릴 사업도 만들어냈다. 목숨을 걸고 압록강까지 건넜다.

 

카지노라고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강원랜드 출입이 이어지면서 조선소 일은 뒷전으로 밀렸다. 부인과의 갈등도 깊어졌다. 결국 그는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사북에 월세방을 얻었다.

 

용접공 이주영은 그렇게 ‘카지노 연구가’로 변했다.

 

◇ 무너진 타짜들에게 길을 묻다

 

이씨는 강원랜드와 사북 일대에서 소문난 카지노 고수들을 찾아다녔다.

 

대한항공 기장 출신의 해외 카지노 경험자, 세관원 출신의 노년 겜블러, 아파트 시행사업으로 수백억 원을 벌었다가 카지노에서 재산을 날린 사업가도 만났다.

 

그러나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성공담보다 실패담에 가까웠다.

 

세관원 출신 남원호(가명)씨는 라스베이거스와 필리핀, 강원랜드를 오가며 40년 가까이 카지노를 경험한 인물이었다. 한때 서울의 아파트와 부동산 등 상당한 재산이 있었지만 카지노를 거치며 대부분 잃었다고 했다.

 

그는 이씨에게 말했다.

 

“돈이 있을 때는 카지노가 만만해 보였지. 빈털터리가 되고 나서야 알았어. 카지노는 사람을 거지로 만드는 공장이야.”

 

시행사 대표였던 최정섭(가명)씨의 삶은 더욱 극적이었다.

 

그는 아파트 건설사업으로 막대한 재산을 모았지만 비즈니스 관계자와 강원랜드에 왔다가 바카라에 빠졌다. 5층짜리 빌딩과 아파트, 별장까지 처분했고 결국 가정도 무너졌다고 했다.

 

카지노에서 만난 ‘고수’들은 모두 한때 부자였고 머리가 좋았으며 승부에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돈을 잃었다.

 

그런데 이씨는 그들의 몰락에서 경고가 아니라 비법을 찾으려 했다.

 

‘이 사람들이 실패한 원인을 피하면 나는 성공할 수 있다.’

 

카지노에서 가장 위험한 착각이 시작된 것이다.

 

◇ “바카라에는 분명히 틈이 있다”

 

이씨는 바카라 결과를 기록하고 베팅 흐름을 분석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줄’, ‘퐁당’, ‘꺾임’ 같은 결과 배열도 관찰했지만 그는 느낌에 의존하는 베팅을 경계했다. 감정이 개입되는 순간 게임이 무너진다고 판단했다.

 

그는 자신만의 원칙을 만들었다.

 

"적은 돈으로 시작할 것.

목표액을 따면 즉시 일어날 것.

손실이 발생해도 베팅액을 무작정 올리지 말 것.

오랜 시간 테이블에 앉지 말 것.

분노하거나 흥분하면 그날 게임을 끝낼 것." 등이다.

 

원칙만 놓고 보면 합리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아무리 정교한 자금관리 원칙을 세워도 바카라의 결과 자체를 예측할 수는 없다는 점이었다. 플레이어와 뱅커의 승패는 이전 판의 결과와 무관하며, 어떤 배열도 다음 카드를 알려주지 않는다.

 

이씨 자신도 “100% 이기는 시스템은 없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방식이라면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었다.

 

카지노가 사람을 붙잡는 힘은 바로 이 모순에서 나온다.

 

‘완벽한 방법은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내 방법만은 다를 것’이라고 믿게 만든다.

 

◇ 강원랜드를 떠나 마닐라로

 

이씨는 강원랜드에서는 자신이 구상한 시스템을 제대로 시험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좌석 경쟁이 치열하고 원하는 시간에 게임을 중단했다가 다시 참여하기 어려웠다. 특히 최고 베팅한도 30만원은 시스템 베팅에서 최고 걸림돌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는 자유롭게 테이블을 옮기고 베팅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필리핀을 생각했다.

 

이씨는 필리핀 마닐라 카지노에서 '생활 바카라'를 하며 살았다는 몇 사람의 선배 겜블러의 경험담을 듣고 2016년 7월 필리핀 마닐라로 향했다.

그는 낮에는 전날의 게임 결과를 정리하고 밤에는 카지노로 향했다. 직접 베팅하지 않는 날에는 뒤에서 다른 고객들의 게임을 관찰했다. 항상 맑은 정신으로 카지노에 간다는 이씨는 술도 멀리했다.

 

돈을 잃은 고객이 언제 베팅액을 올리는지, 연승한 사람이 어느 순간 욕심을 부리는지, 자칭 고수의 표정이 손실 앞에서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지켜봤다.

 

그는 카지노를 하나의 거대한 실험실처럼 생각했다.

 

2016년 9월 한 차례 귀국한 그는 강원랜드 주변에 머물며 자신의 전략을 다시 다듬었다. 도박중독 예방·치유 프로그램에도 참여해 중독자들이 무너지는 과정까지 살폈다.

 

그리고 2017년 6월, 최종 승부를 위해 다시 마닐라로 떠났다. 사북 숙소에 있던 짐을 다 정리했다.

 

이번에는 자신감이 달랐다.

 

마닐라로 떠나기 직전 그는 “시스템은 완성됐습니다. 이제 실전에서 증명하는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 마닐라에서의 마지막 만남

 

필자가 이씨를 다시 만난 것은 2017년 9월이었다.

 

그는 과거보다 마른 모습이었지만 눈빛은 살아 있었다. 식사를 하면서도 바카라 이야기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않았다.

 

“하루 게임머니는 50만 원 정도입니다. 20만 원을 따면 일어납니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이 리듬만 유지하면 됩니다.”

 

그의 설명은 치밀했다.

 

그러나 이야기를 들을수록 이상한 모순이 드러났다.

 

그는 카지노에서 욕심을 부리면 반드시 실패한다고 말했다. 바카라에서 100% 이기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수십 년간 게임을 연구한 사람들도 결국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신만은 다를 것이라고 믿었다.

 

“강원랜드에서 그림(전광판)만 보고 베팅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실패합니다. 느낌으로 하는 ‘찬스 베팅’은 타짜가 아니라 중독자로 가는 길입니다.”

 

잠시 말을 멈춘 그가 덧붙였다.

 

“나는 그 사람들과 다릅니다.”

 

카지노에 빠진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었다.

 

그의 도전을 지켜본 카지노 경력 38년의 박준기(가명)씨는 냉정하게 말했다. 박씨 역시 대기업과 IT업계를 거친 엘리트였지만 마카오 카지노에서 전 재산 60억 원을 잃었다고 했다.

 

“카지노를 오래 파고들면 마지막에는 정답이 없다는 정답만 남아. 가끔 이기는 것은 시스템 때문이 아니라 운이 좋았던 거야. 그런데 사람들은 그 운을 자기 실력으로 착각하지.”

 

그는 이씨에게도 여러 차례 그만두라고 충고했다.

 

“압록강은 건너편이 보이지만 카지노에는 건너편이 없어. 계속 가면 결국 빠져 죽는 바다야.”

 

하지만 이씨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연락이 끊겼다

 

2018년, 필자는 마닐라에 머물던 이씨와 몇 차례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전화가 연결되지 않았다. 메시지를 보내도 답이 오지 않았다. 지인을 통해 행방을 물었지만 뚜렷한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왔는지, 필리핀의 다른 도시로 옮겼는지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카지노에서 성공해 조용히 살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반대로 돈을 잃고 사람들과의 연락을 끊었을 수도 있다. 신변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 역시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확인된 사실은 단 하나다.

 

카지노 타짜가 되겠다며 마닐라로 향했던 그는 2018년 이후 필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씨는 북한 최고의 장기 고수를 찾아가 승부를 배웠다.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 군인 3만 명을 먹여 살렸고, 총탄을 피해 얼어붙은 압록강도 건넜다.

 

그의 삶은 끊임없는 승부의 연속이었다.

 

그런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상대는 카지노였다.

 

그러나 카지노는 장기판과 달랐다. 상대의 표정을 읽을 수도 없고, 수십 수 앞을 계산해 외통수로 몰아넣을 수도 없다. 이전 판의 승패는 다음 판을 예고하지 않으며, 장기간 게임을 계속할수록 수학적으로 유리한 쪽은 고객이 아니라 카지노다.

 

세상의 수많은 타짜 지망생이 카지노 앞에서 무너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카지노의 확률을 연구한다고 믿지만, 시간이 흐르면 카지노는 오히려 그들의 조급함과 자존심, 욕심과 착각을 읽어낸다.

 

압록강의 총탄보다 더 무서운 것은 소리 없이 사람을 끌어당기는 카지노의 불빛인지도 모른다.

 

그 불빛 속으로 걸어 들어간 이씨가 자신만의 시스템을 증명했는지, 아니면 또 한 명의 ‘사라진 타짜’가 되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마지막 만남에서 남긴 말은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릅니다.”

카지노에서 가장 위험한 도전은 바로 그 믿음에서 시작된다.

 (※ 이 글은 필자가 당사자와 주변 인물들을 수십차례 만나 들은 증언을 토대로 구성한 논픽션이다. 필리핀 마닐라에서도 만난바 있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가명이며, 일부 세부 내용은 당사자의 기억과 주장에 의존하고 있다. 편집자 주)

 

자주 묻는 질문

북한군 3개 군단을 책임졌던 경제통이 왜 카지노에 빠지게 되었나요?+

북한에서 경제대학을 졸업하고 군부대 운영자금 조달 등 실무를 담당했던 이씨는 탈북 후 남한의 조선소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던 중 강원랜드를 방문했습니다. 그는 북한에서 겪어보지 못한 화려한 카지노 환경과 짧은 시간에 돈이 불어나는 경험을 하며, 자신의 비상한 두뇌와 계산 능력을 활용하면 카지노를 이길 수 있다는 위험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씨가 카지노를 이기기 위해 연구했다는 '시스템'은 무엇인가요?+

이씨는 감정에 휘둘리는 베팅을 경계하며 철저한 자금 관리와 원칙을 세웠습니다. 적은 돈으로 시작하고 목표액 달성 시 즉시 중단하며, 손실이 발생해도 베팅액을 무작정 올리지 않는 등의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그는 바카라의 흐름을 수첩에 기록하며 분석했으나, 사실상 바카라는 독립 시행의 확률 게임이기에 완벽한 승리 시스템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모순을 안고 있었습니다.

마닐라로 떠난 이씨는 결국 어떻게 되었나요?+

강원랜드의 낮은 베팅 한도와 환경에 한계를 느낀 이씨는 보다 자유로운 게임 환경을 찾아 2017년 필리핀 마닐라로 향했습니다. 그는 카지노를 거대한 실험실로 삼아 자신의 시스템을 실전에서 증명하려 했으나, 결국 2018년 마닐라 현지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이는 카지노라는 공간이 가진 냉혹한 현실과 도박의 위험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습니다.

기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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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봉기자

카지노 이슈와 산업 전반을 취재하는 타타타 저널의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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