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는 돈도 있었고 가족도 있었다. 무엇보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안정된 사업이 있었다.
그런 철수씨가 강원랜드 카지노를 처음 찾은 것은 호기심 때문이었다.
화려한 조명 아래 룰렛 휠이 돌아가고 테이블 위에서는 칩이 오갔다.
딜러가 공을 던지면 고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휠로 향했다.
공이 어느 숫자에 멈추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환호했고 누군가는 고개를 떨궜다.
철수씨도 그 긴장감에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가벼운 오락이었다. 몇 차례 돈을 따기도 했다.
그런데 카지노를 떠난 뒤에도 룰렛에서 이겼던 순간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다시 찾았다.
또 찾았다.
전남 여수에서 강원 정선까지 수백 킬로미터를 달려가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하루 이틀이었다. 나중에는 한 번 카지노에 들어가면 며칠씩 머물렀다.
음식점은 직원들에게 맡겼다. 중요한 사업 일정도 카지노에 가는 날이면 뒷전으로 밀렸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더 이상 식당 매출이 아니었다.
룰렛이었다.
어느새 카지노를 드나든 지 2년도 되지 않아 날린 돈이 4억원에 달했다.
일반인에게는 평생 모으기도 어려운 거액이었다.
그런데도 철수씨는 멈추지 못했다.
"4억원을 잃었는데도 그 돈을 되찾겠다는 생각보다 게임을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했어요."
돈을 잃는 고통보다 게임을 하지 못하는 괴로움이 더 커진 것이다.
철수씨는 더 늦기 전에 카지노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2026년 3월 강원랜드를 찾아와 스스로 출입정지를 신청했다.
그러나 출입정지는 그의 발길을 막았을 뿐 머릿속의 룰렛까지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철수씨는 친구에게 연락했다.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자. 밥 한번 먹자."
오랜 친구의 연락이었다. 특별히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두 사람은 횟집에서 만났다.
오랜만에 회포를 풀며 술잔을 기울였다. 철수씨는 평소보다 후하게 친구를 대접했다.
식사가 끝나자 고급 유흥주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비싼 양주가 나왔다. 술자리가 길어졌고 계산은 모두 철수씨가 했다.
그날 쓴 돈만 300만원이 넘었다.
그 정도 돈이면 적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철수씨에게는 목적이 있었다.
술기운이 오르고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무렵이었다.
철수씨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친구야, 나 부탁 하나만 들어주라."
"뭔데?"
"신분증 하루만 빌려줘."
친구는 뜻밖의 부탁에 당황했다.
"신분증은 왜?"
철수씨는 카지노 출입정지 때문에 강원랜드에 들어갈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자신의 신분증으로는 입장이 불가능하니 친구의 주민등록증을 빌려달라는 것이었다.
친구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남의 신분증으로 카지노에 들어간다는 것이 정상적인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랜 친구였다.
술도 많이 마셨고 거절하기도 쉽지 않았다.
'설마 무슨 큰일이야 생기겠어.'
결국 친구는 주민등록증을 건넸다.
철수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게는 카지노 출입구를 통과할 수 있는 열쇠를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몰랐다.
그 주민등록증 한 장이 오랜 친구 두 사람을 나란히 전과자로 만드는 화근이 될 줄은.
철수씨는 친구의 신분증을 갖고 강원랜드 카지노를 찾았다.
출입구가 가까워질수록 긴장감이 밀려왔다.
혹시 들키면 어떻게 될까.
그러나 이미 마음은 카지노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그는 친구의 주민등록증을 제시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첫날은 별문제 없이 출입구를 통과했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룰렛 테이블이 눈앞에 나타났다.
게임이 시작됐다.
룰렛 휠이 돌았다. 공이 튀었다. 숫자가 결정됐다.
철수씨에게는 그 모든 것이 반가웠다.
그날 그는 약 300만원을 땄다.
그러나 돈보다 더 위험한 것을 얻었다.
자신감이었다.
'이렇게 하면 들어갈 수 있구나.'
출입정지도, 신분증 검사도 이제는 두렵지 않을 것 같았다.
첫날의 성공은 경계심을 무너뜨렸다.
다음 날 철수씨는 또다시 카지노로 향했다.
같은 신분증이었다.
같은 출입구였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달랐다.
신분증을 확인하던 보안요원이 그를 제지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