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타타 저널

요지경카지노·26. 10. 13.

바다에서 번 돈, 카지노에 묻다

홍춘봉편집국 기자·기자

크루즈선

고한역의 신문지 한 장

 

2001년 어느 날 밤, 강원도 정선군 고한역.

 

한 남자가 역사 한쪽에서 신문지를 덮고 잠을 청했다.

 

주머니에는 동전 한 닢 없었다. 끼니를 거른 지도 사흘째였다. 배는 고팠지만 누구에게도 손을 벌리지 않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의 바다를 누비며 한 달에 수천만원을 벌었던 남자였다.

 

남미와 호주, 유럽, 아프리카는 물론 동남아시아의 수많은 항구에서 술과 여자, 카지노를 즐겼던 마도로스. 수십만t급 유조선에서 선원들을 호령하던 갑판장.

 

그러나 그날 밤 그에게 남은 것은 신문지 한 장 뿐이었다.

 

강만진(가명·69)씨.

 

부산 출신인 그는 자신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추락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강원랜드 카지노 때문이었다.

 

"그때는 진짜 돈 한 푼 없었어요. 사흘을 굶기도 했지. 그래도 남한테 돈 달라는 소리는 못 하겠더라고."

 

고한역에서 신문지를 덮고 잠을 잤다는 이야기를 꺼내면서도 그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카지노 주변에는 남에게 돈을 빌리거나 구걸하며 연명하는 이른바 '앵벌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생활만큼은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내가 아무리 못살아도 남에게 피해 주는 짓은 못 해요. 그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그 자존심이 사흘간의 굶주림보다 강했던 것일까.

 

그는 그날의 추위를 기억했지만, 정작 카지노에서 얼마를 잃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돈을 잃은 날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갑판장

 

그가 처음 배를 탄 것은 열아홉 살 무렵인 1970년대 중반이었다.

 

당시 한국에서 원양선원은 돈을 벌 수 있는 특별한 직업이었다. 해외에서 외화를 벌어오는 뱃사람들은 웬만한 육지 직장인보다 높은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강씨는 화물선 가운데서도 위험성과 전문성이 높은 유조선과 케미컬선을 주로 탔다.

 

수천t급 선박에서 시작해 수십만t급 유조선까지 경험했다.

 

경력이 쌓이면서 갑판장 자리에 올랐다.

 

갑판장은 단순히 선원들을 지휘하는 반장이 아니었다.

 

유조선에서 화물을 싣고 내리는 작업은 작은 실수 하나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어느 탱크에 원유를 싣고, 어느 배관으로 항공유나 다른 석유제품을 옮길지 정확하게 관리해야 했다.

 

"기름이라는 게 종류가 얼마나 많은 줄 알아요? 탱크 하나 잘못 연결하면 난리가 나는 거예요. 갑판장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해."

 

그는 원유를 정제하고 가공하면 연료는 물론 플라스틱과 합성섬유의 원료까지 다양한 제품이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야기가 배로 돌아가자 목소리부터 달라졌다.

 

한때 수십명의 선원을 상대하며 거친 작업을 지휘하던 갑판장의 기질이 살아나는 듯했다.

 

"배에서는 어영부영하면 안 돼요. 말귀 못 알아듣고 일을 제대로 못 하면 다른 사람 목숨까지 위험해진다고."

 

그의 말에 따르면 당시 뱃사람들의 세계는 군대 못지않게 위계질서가 엄격했다.

 

선후배 관계도 분명했다.

 

하지만 거친 규율 속에서도 서로를 돕는 동료애가 있었다.

 

태평양과 인도양을 건너는 항해는 짧아도 수개월 넘게 걸렸다.

 

부산항을 떠나 남미에서 기름을 싣고 아시아 항구를 돌아 귀국하는 데 최소 두 달 반 이상 걸리기도 했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 멀미와 피로, 사고 위험.

 

그 모든 고생을 견디게 만든 것은 돈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 돈이 그의 인생을 무너뜨리는 씨앗이 될 줄은 몰랐다.

 

◇"한 달에 5000만원도 벌었지"

 

1980년대 후반, 강씨의 인생은 절정에 달했다.

 

그는 노태우 정부 시절을 유독 선명하게 기억했다.

 

당시 일부 해외 항로에서는 정식 운임이나 급여 외에도 다양한 거래를 통해 큰 돈을 벌 수 있었다는 것이 그의 회고다.

 

특히 350~5000t급 소형 유조선으로 기름을 운송하며 다른 상품과 물물교환하는 거래에 관여한 적이 있다고 했다.

 

"기름 싣고 가서 참깨하고 바꾸기도 했어요. 그때는 돈이 그냥 굴러들어 왔다니까."

 

그는 당시 한 달에 3000만~4000만원, 많게는 5000만원까지 벌었다고 주장했다.

 

급여와 별도 거래 수익이 포함된 금액으로 보이지만 정확한 내역은 확인되지 않는다.

 

그의 기억 속에서 당시 해운업계는 지금보다 비공식적인 돈거래가 많았던 세계였다.

 

좋은 배에 승선하거나 보직을 옮기기 위해 브로커에게 돈을 건네기도 했다는 것이다.

 

"큰 배 타려면 돈도 필요했어요. 브로커가 중간에서 다 해결해 주는 거지."

 

선장과 갑판장의 수입 격차도 컸고, 선박과 항로에 따라 벌이가 천차만별이었다고 했다.

 

그가 이야기하는 과거의 돈벌이는 합법적인 급여와 그렇지 않은 거래가 뒤섞인 세계였다.

 

마약이나 금괴 밀수 이야기도 당시 항구에서 들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자신이 그런 범죄에 가담했다고 말한 것은 아니었다.

 

분명한 것은 그가 돈을 벌 수 있는 능력만큼은 자신했다는 사실이다.

 

"그때 돈만 모았으면 지금은 큰 부자 됐겠지."

 

그의 입가에 씁쓸한 웃음이 번졌다.

 

하지만 당시의 강만진에게 저축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배에서 내려오는 순간, 또 다른 세계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호주의 밤, 선실에 울려 퍼진 음악

 

호주의 어느 항구.

 

긴 항해를 마치고 배가 접안하면 갑판 위에는 육지에서 만난 젊은 남녀들이 올라오기도 했다고 한다.

 

선실에는 위스키와 소주가 놓였다.

 

음악이 흐르고 춤판이 벌어졌다.

 

강씨는 그 시절을 회상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는 외국 젊은 여자들이 배에 놀러 오고 그랬어요. 같이 술 마시고 춤추고 밤새 놀다가 자고 가기도 했지."

 

오늘날 강화된 항만 보안과 선박 안전 규정을 생각하면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강씨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일부 항구에서는 선박 출입 통제가 지금보다 느슨했고 선원들의 음주와 유흥도 잦았다.

 

그는 여러 나라에서 만난 여성들과의 관계를 숨기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성병에 걸려 치료받은 적도 있었다고 했다.

 

"젊었을 때는 겁나는 게 없었어요. 돈도 잘 벌었고, 여자도 만나고, 하고 싶은 거 다 해봤으니까."

 

그의 말에는 한때 세계를 제집처럼 누볐던 남자의 허세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항구가 있는 나라 중에 안 가본 데가 없을 거야. 수백 군데는 돌아다녔으니까."

 

그에게 바다는 직장이었지만 항구는 해방구였다.

 

몇 달 동안 갇힌 듯 지내던 선원들은 육지에 내리면 돈을 물 쓰듯 썼다.

 

술집에서 밤을 보내고, 낯선 여성과 사랑을 나누고, 카지노에서 큰 돈을 걸었다.

 

선실에서는 목숨을 걸고 돈을 벌었다.

 

항구에서는 그 돈을 쓰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스물한 살 무렵 처음 발을 들인 카지노가 그의 인생을 서서히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카지노의 덫, "잃으면 다시 배 타면 되지"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낯선 항구의 카지노에서 게임을 즐기는 일이 특별한 재미로 다가왔다.

 

카지노의 화려한 조명과 테이블 위에 쌓인 칩, 승패가 갈리는 순간의 짜릿함은 긴 항해에서 쌓인 긴장을 잊게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베팅 금액이 커졌다.

 

한 번 이기면 더 큰 돈을 걸었다.

 

잃으면 본전을 찾으려고 버텼다.

 

결과는 대개 같았다.

 

수개월간 배에서 고생하며 번 돈이 카지노에서 사라졌다.

 

그런데도 강씨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때는 돈 떨어지면 배 타면 됐어요. 몇 달 나갔다 오면 또 돈이 생기니까."

 

바로 그 생각이 문제였다.

 

다시 벌 수 있다는 자신감은 손실에 대한 두려움을 무디게 만들었다.

 

카지노에서 돈을 잃어도 생활을 바꿀 이유가 없었다.

 

다시 승선하면 됐다.

 

그렇게 10년, 20년이 흘렀다.

 

그가 세계의 바다를 항해한 목적은 어느 순간 달라져 있었다.

 

먹고살기 위해 배를 타는 것이 아니라, 카지노에서 잃은 돈을 메우기 위해 다시 바다로 나가는 생활이었다.

 

마도로스에게 바다는 더 이상 꿈과 낭만의 공간이 아니었다.

 

카지노 자금을 마련하는 일터가 돼버린 것이다.

 

◇"당장 보따리 싸서 나가!"

 

2000년 10월28일.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에 강원랜드 스몰카지노가 문을 열었다.

 

강씨의 인생에서도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그 무렵 오랫동안 이어온 갑판장 생활을 정리했던 그는 강원랜드를 찾기 시작했다.

 

세계의 항구를 돌아다니지 않아도 카지노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카지노가 가까워진 만큼 가정은 더 멀어졌다.

 

2000년 12월 초.

 

그가 강원랜드에 다녀오자 아내의 참았던 분노가 폭발했다.

 

"이제 더 이상 못 참겠어. 당장 보따리 싸서 나가!"

 

강씨가 기억하는 아내의 마지막 통보였다.

 

그는 집을 나왔다.

 

그렇게 부산 출신의 마도로스는 가족을 뒤로하고 강원랜드 인근 고한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평생 세계의 항구를 떠돌던 남자가 마침내 한곳에 정착했지만, 그곳은 가족이 기다리는 고향이 아니었다.

 

카지노가 있는 폐광촌이었다.

 

그때부터 가족과의 관계는 사실상 끊어졌다.

 

한때 누구보다 많은 돈을 벌었던 가장이었지만 아내와 자녀들에게 남겨줄 재산도 없었다.

 

돈을 벌면 카지노로 향했고, 돈이 떨어지면 다시 일자리를 찾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가족에게 돌아갈 명분마저 잃었다.

 

"내가 카지노 때문에 집에서 쫓겨났잖아요. 누구를 원망하겠어요."

 

그는 자신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지 않았다.

 

그러나 잘못을 인정하는 것과 카지노를 끊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1억원을 벌어도 빈털터리

 

고한으로 이주한 뒤에도 강씨는 바다와 완전히 인연을 끊지 못했다.

 

오랜 경험을 가진 갑판장은 필요로 하는 곳이 있었다.

 

정식 장기 승선이 어려워진 뒤에도 단기 승선과 임시직 형태로 일을 이어갔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2020년 무렵까지 배를 탔다.

 

나이가 들어서도 한 해 1억원가량 벌었던 때가 있었다고 했다.

 

문제는 돈이 생긴 다음이었다.

 

땀 흘려 번 돈이 통장에 들어오면 강원랜드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카지노에서는 오늘 잃은 돈을 내일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번의 큰 승부가 지난 수십 년의 실패를 만회해 줄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게임을 마치고 밖으로 나올 때면 통장은 다시 가벼워져 있었다.

 

그가 고한에서 지켜본 장기 체류자들 가운데는 돈을 잃고 주변 사람에게 손을 벌리는 이들도 있었다.

 

강씨는 자신에게 여유가 있을 때 그들을 도와줬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곤궁해졌을 때 손을 내미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여성들과의 교제에서도 금전적인 피해를 봤다고 털어놓았다.

 

사람이 그리워 만났다가 돈까지 잃는 일이 반복됐다.

 

이 무렵 그에게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가난보다 외로움이었다.

 

선원들이 북적이던 갑판에서는 사람을 지휘할 줄 알았지만, 육지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읽고 관계를 이어가는 일에 서툴렀다.

 

"나는 평생 배만 탔잖아요. 사회생활은 낙제점이지."

 

그 말은 수십 년 동안 육지와 바다 사이를 떠돌았던 남자의 뒤늦은 자기평가였다.

 

고한 생활이 시작된 뒤 강씨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 찾아왔다.

 

가족은 떠났고 돈도 없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벌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몸은 늙어가는데 카지노에서 잃은 돈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한때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생각까지 했다고 고백했다.

 

그에게 세상은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는 곳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눈에 열심히 살아가는 젊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많은 돈을 벌지 못해도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

 

힘든 형편에서도 하루하루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그 모습을 보면서 그는 자신의 처지를 다시 생각했다고 했다.

 

평생 세계의 바다에서 수많은 위험을 견뎠는데, 돈을 잃었다는 이유로 삶까지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는 살아보기로 했다.

 

그 결심이 도박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준 것은 아니었다.

 

카지노를 끊는 일은 여전히 어려웠다.

 

하지만 적어도 삶을 끝내겠다는 생각에서는 돌아섰다.

 

이후 육지에서 새로운 일도 찾아 나섰다.

 

부동산 중개업에 손을 대봤고 건설현장에서 판넬 설치 작업도 했다.

 

갑판장으로 수많은 선원을 지휘했던 사람이 이제는 건설현장의 일용직 노동자로 일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는 그 시절이 마음 편했다고 했다.

 

"노가다가 몸은 힘들어도 스트레스는 없어요. 시키는 일만 하면 되잖아요."

 

거대한 유조선에서 배관과 탱크를 관리하던 때는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반면 건설현장에서는 하루 일을 마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큰 돈을 버는 일보다 마음 편하게 일하는 시간이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그는 뒤늦게 깨달았다.

 

오랜 세월 가족과 떨어져 살았지만 혈육의 정까지 완전히 지워진 것은 아니었다.

 

얼마 전 강씨는 누이에게 연락해 1000만원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기대고 싶었던 가족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답은 거절이었다.

 

누이에게도 사정이 있었을 테고, 오랫동안 돈을 잃어온 동생을 믿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강씨는 구체적인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짧게 말했다.

 

"거절하더라고. 그래서 알았지.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구나."

 

그는 더 이상 가족에게 돈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친구나 동생, 가까운 지인에게도 손을 벌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돈이 없어서 굶었던 기억보다 그에게 더 아픈 것은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말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였다.

 

그는 돈을 많이 벌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세계의 바다를 누비던 전성기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노후였다.

 

그에게 남은 것은 누구를 탓할 수 없다는 사실뿐이었다.

 

2026년 가을.

 

강씨는 여전히 정선군 고한읍에 살고 있다.

 

그의 거처는 오래전 삼탄 광부들이 생활하던 낡은 사택이다.

 

젊은 시절 수십만t급 유조선의 갑판을 지휘하던 남자에게 이제 남은 생활공간은 소박하다.

 

그러나 이곳 이야기를 꺼내자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여기가 얼마나 좋은데요. 여름에도 시원하고, 공기 맑고, 아주 살기 좋아요."

 

그에게는 작은 텃밭도 있다.

 

다섯 평 남짓한 땅.

 

그곳에서 채소를 가꾸는 시간이 요즘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한때 그는 큰 돈을 벌기 위해 두 달 넘게 바다를 건넜다.

 

항구에 도착하면 술을 마시고 여성을 만나고 카지노에 갔다.

 

어느 나라에 가든 그가 쫓아다닌 것은 돈과 자극적인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고한의 맑은 공기와 조용한 산골 생활이 좋다고 했다.

 

노후를 지탱하는 연금도 있다.

 

"카지노만 자주 안 가면 연금으로 충분히 먹고살아요. 돈 많이 필요 없어요."

 

그는 여전히 카지노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강원랜드가 가까운 곳에 있고 수십 년 동안 몸에 밴 습관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있었다.

 

돈을 더 버는 것이 아니었다.

 

카지노에 돈을 가져다주지 않는 것이었다.

 

강씨는 내년이면 일흔 살이다.

 

운전면허도 없고 번듯한 재산도 없다.

 

가족과의 관계도 회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직 남은 시간이 있다.

 

세계의 바다에서 거친 파도와 싸우던 마도로스는 평생 돈을 벌기 위해 항해했다.

 

그렇게 번 돈을 술과 여자, 카지노에 쏟아부었다.

 

젊어서는 돈을 잃어도 다시 벌 수 있었지만, 늙어서는 잃어버린 세월을 되찾을 수 없었다.

 

그가 바다에서 익힌 가장 중요한 원칙은 선원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서로 돕고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인생을 지키는 데는 실패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에게 지금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인지 물었다.

 

그는 젊은 시절의 거액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외국 항구에서 만났던 여성들의 이야기도 아니었다.

 

다섯 평 텃밭과 고한의 맑은 공기를 이야기했다.

 

수십 년 동안 세상의 수많은 항구를 찾아다녔던 그가 가장 편안하다고 말한 곳은 뜻밖에도 카지노 옆 폐광촌이었다.

 

강씨에게 카지노는 여전히 위험한 유혹이다.

 

그 유혹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제 그는 알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해 배를 타던 시절에도, 카지노에서 잃은 돈을 되찾으려고 발버둥 치던 시절에도 깨닫지 못했던 사실을.

 

행복은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느냐가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것을 얼마나 지켜내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고한역에서 신문지 한 장을 덮고 밤을 보냈던 늙은 마도로스.

 

한때 세계의 바다를 호령했던 강만진은 이제 다섯 평 텃밭에서 자신의 마지막 항해를 이어가고 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거친 파도는 바다가 아니라 카지노에 있었다.

 

 

 

 

 

 

 

자주 묻는 질문

도박 중독이 선원이었던 강만진 씨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렸나요?+

강만진 씨는 수십 년간 갑판장으로 일하며 고수익을 올렸으나, 벌어들인 돈 대부분을 카지노에서 탕진했습니다. 결국 경제적 파탄은 물론 가족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고, 한때는 끼니를 잇지 못해 고한역에서 신문지를 덮고 노숙을 해야 할 정도로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과거 선원 시절에는 왜 카지노를 쉽게 끊지 못했나요?+

당시 그는 '돈을 잃어도 다시 배를 타서 벌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바다에서의 고된 노동을 카지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켰고, 승선할 때마다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자신감이 오히려 도박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도박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어떤 노력을 했나요?+

극단적인 선택까지 고려했던 그는 묵묵히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을 보며 삶의 의지를 다잡았습니다. 이후 건설 현장 일용직 등 육지의 새로운 일자리를 찾으며, 큰돈을 쫓는 대신 몸은 힘들어도 스트레스가 적은 소박한 일상 속에서 마음의 평온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자 소개

홍
홍춘봉기자

카지노 이슈와 산업 전반을 취재하는 타타타 저널의 기자입니다.

홍춘봉 기자의 더 보기 →

댓글

회원 가입·로그인 없이 댓글을 달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